USB 메모리에 중요한 파일을 옮길 때, 처음 몇 초간은 번개처럼 빠른 속도를 보여주다가 갑자기 거북이처럼 느려지는 답답한 경험.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보셨을 겁니다. ‘혹시 내 USB가 고장 났나?’, ‘바이러스에 걸린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복사를 취소하고 다시 시도해 보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죠.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것은 여러분의 USB 메모리가 고장 났다는 신호가 아닐 확률이 99%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현상은 대부분의 저장 장치가 가진 아주 정상적인 ‘특성’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 속도의 착시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그 원인을 속 시원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1. 속도의 착시 현상, 캐시 메모리의 비밀
파일 복사를 시작하는 순간, 진행률 표시줄이 ‘슝’하고 치솟는 이유는 바로 ‘캐시 메모리’라는 숨은 일꾼 덕분입니다. 캐시 메모리는 USB 안에 있는 아주 작지만, 엄청나게 빠른 ‘임시 작업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컴퓨터는 일단 파일을 이 빠른 임시 공간으로 먼저 던져 넣습니다.
이때 컴퓨터는 최종 목적지까지 파일이 완전히 저장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빠른 임시 공간으로 데이터가 이동한 속도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마치 물건을 창고 안까지 정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무시하고, 일단 창고 입구까지만 빠르게 던져 넣는 속도를 측정하는 것과 같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처음 경험하는 ‘속도의 착시’입니다.
2. 진짜 속도의 병목 현상
그렇다면 왜 속도는 갑자기 뚝 떨어지는 걸까요? 그 이유는 작고 빠른 ‘임시 작업 공간(캐시)’이 가득 찼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임시 공간에 쌓여있던 파일들을 진짜 저장 공간인 ‘메인 메모리’로 옮겨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 메인 메모리는 캐시 메모리보다 훨씬 느립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병목 현상’이 발생하며, 우리는 비로소 해당 USB의 진짜 쓰기 속도를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가격이 저렴한 제품일수록 이 캐시 공간이 작고 메인 메모리의 성능이 낮아, 속도 저하가 훨씬 더 크게 체감됩니다. 따라서 이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은, 제품의 본래 성능을 이해하고 과도한 기대를 버리는 것입니다.
3. 큰 파일 1개 vs 작은 파일 1000개
복사하는 파일의 종류에 따라서도 속도는 하늘과 땅 차이로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10GB짜리 영화 파일 하나를 옮기는 것과, 수천 개의 사진이나 문서 파일이 담긴 10GB짜리 폴더를 옮기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하나의 큰 파일을 옮기는 것은 마치 이삿짐센터에서 커다란 냉장고 하나를 옮기는 것과 같습니다. 한번 들면 목적지까지 쭉 가면 되죠. 하지만 수천 개의 작은 파일을 옮기는 것은, 수천 권의 책을 한 권씩 날라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책 한 권마다 주소를 확인하고, 자리를 잡고, 내려놓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엄청난 시간이 소요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러 개의 작은 파일을 하나의 압축 파일(ZIP 등)로 묶어서 옮기는 것입니다.
4. 어떤 문에 꽂으셨나요? (USB 포트 확인)
최신형 USB 3.0 메모리를 큰맘 먹고 구매했는데도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혹시 잘못된 ‘문’에 연결하지 않았는지 확인해 봐야 합니다. 컴퓨터의 USB 포트는 보통 파란색의 USB 3.0 포트와, 검은색이나 하얀색의 구형 USB 2.0 포트로 나뉩니다.
아무리 빠른 스포츠카(USB 3.0 메모리)가 있어도, 좁은 골목길(USB 2.0 포트)에서는 제 속도를 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USB의 성능을 100% 활용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반드시 파란색으로 된 USB 3.0 포트에 연결하는 것입니다. 아주 간단하지만, 많은 분들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5. 속도의 또 다른 적, 발열
장시간에 걸쳐 대용량 파일을 계속해서 복사하면, USB 메모리 내부의 컨트롤러 칩에서 상당한 열이 발생합니다.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오래 하면 뜨거워지는 것과 같은 원리죠. 이때 칩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성능을 낮추는 ‘쓰로틀링(Throttling)’ 현상을 일으킵니다.
특히 크기가 작고 성능이 좋은 제품일수록 발열에 취약한 경향이 있습니다. 이 현상을 완화하기 위한 해결책은, 아주 거대한 파일을 옮길 때는 중간에 잠시 휴식 시간을 주어 열을 식혀주거나, 통풍이 잘되는 곳에 USB를 연결하는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새로 산 비싼 USB인데도 속도가 떨어져요. 불량인가요?
A. 불량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무리 비싼 제품이라도 캐시 메모리 용량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다만, 고급 제품일수록 캐시 용량이 크고 캐시가 다 찬 이후의 ‘지속 쓰기 속도’가 월등히 높아 속도 저하 폭이 적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Q. USB를 포맷하면 속도가 빨라지나요?
A. 파일 시스템을 변경하면 특정 상황에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래된 FAT32 방식은 4GB 이상의 단일 파일을 복사할 수 없지만, NTFS나 exFAT 방식으로 포맷하면 이 문제가 해결됩니다. 하지만 전반적인 쓰기 속도 자체를 극적으로 향상시키지는 못합니다.
Q. 속도가 떨어지지 않게 하는 방법은 없나요?
A. 안타깝게도 캐시를 사용하는 모든 저장 장치에서 속도 저하 현상은 필연적입니다. 속도가 떨어지는 현상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제품 구매 시 ‘최대 속도’가 아닌 ‘지속 쓰기 속도’가 높은 제품을 선택하고, 여러 개의 작은 파일은 압축해서 옮기는 등의 방법으로 불편함을 ‘줄일’ 수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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